미술아카이브 |미술사(2) 선사미술 '왜 인간은 처음 그림을 그렸을까'

🪴라스코와 알타미라 동굴벽화|이미지를 만드는 인간의 시작

먹을 것을 구하고, 추위를 견디고, 맹수를 피해야 했던 아주 오래전의 인간. 그런데 사람들은 생존만으로도 벅찼을 그 시대에 이상한 일을 시작했습니다.동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벽에 동물을 그리고, 손자국을 남기고, 여러 모양의 기호를 새겼습니다.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광물을 갈아 색을 준비하고, 어두운 동굴을 밝힐 불빛까지 마련했습니다.
왜 인간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요? 사냥이 잘되기를 바랐던 것일까요?
자신들이 경험한 일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어떤 믿음이나 의식을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에게는 보고 느낀 것을 밖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요?
어쩌면 그림을 그린 이유 가운데에는 아주 단순한 마음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리는 일이 즐겁고, 완성된 형상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하나가 아니듯, 선사시대 사람들의 이유 역시 의례와 신앙, 기록과 소통, 그리고 표현하는 즐거움까지 서로 달랐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정확한 답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이 보고, 기억하고, 생각한 것을 이미지로 만들어 남겼습니다.

🪴전체 미술사 타임라인

선사미술→고대미술[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미술→ 그리스 미술→ 로마 미술]→ 중세미술→ 르네상스→ 바로크·로코코→18세기말~19세기미술[ 신고전주의·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20세기 현대미술→ 동시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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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미술사의 가장 오래된 흔적 가운데 하나인 선사미술을 보고 있습니다.

[이번 주제 타임라인]

구석기시대의 이미지 제작
→ 동굴벽화·조각·장신구→ 알타미라 동굴벽화→ 라스코 동굴벽화

라스코와 알타미라는 흔히 ‘인류 최초의 그림’처럼 소개되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유럽보다 훨씬 오래된 이미지와 동굴미술의 흔적이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동굴은 인류 최초의 미술이라기보다 서양 선사미술을 대표하는 중요한 동굴미술 유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눈앞에 들소 한 마리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들소를 보는 것과 들소를 그림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형태를 관찰해야 합니다.
몸통은 어떻게 생겼는지, 다리는 어느 위치에 있는지, 머리와 목은 어떤 방향으로 연결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물이 사라진 뒤에도 그 모습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입체적인 동물을 몇 개의 선과 색으로 바꾸어 평평한 벽 위에 나타내야 합니다.
즉, 보기 → 기억하기 → 생각하기 → 선택하기 → 이미지로 만들기 라는 복잡한 과정이 일어납니다.
수만 년 전의 인간은 이미 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바라본 세상을 다시 표현하는 존재였습니다.

🪴라스코 동굴 '벽 전체를 움직이는 동물의 세계로 만들다'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라스코 동굴은 후기 구석기시대 동굴미술을 대표하는 유적입니다.
1940년 네 명의 청소년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동굴 안에는 말과 오록스, 사슴 등 수많은 동물과 기호가그려지고 새겨져 있습니다.
라스코 II의 ‘황소의 방’ 복원 공간. 라스코 동굴의 대표적인 동물벽화를 실제 크기와 형태에 가깝게 재현하였다.

라스코 II의 ‘황소의 방’ 복원 공간.
라스코 동굴의 대표적인 동물벽화를 실제 크기와 형태에 가깝게 재현하였다.
출처: Wikimedia Commons / Elke Wetzig, CC BY-SA 4.0[사진: 라스코 동굴 황소의 방]

가장 유명한 공간 가운데 하나는 ‘황소의 방’입니다.
거대한 오록스와 말, 사슴 등이 동굴벽을 따라 이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동물 한 마리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미술관에 걸린 그림처럼 네모난 액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물들은 동굴의 굴곡을 따라 나타나고, 어떤 것은 서로 겹치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이미지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즉, 동굴의 벽 전체가 그림의 화면이 됩니다.
사람은 그림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동굴을 걸으며 그림을 만납니다.
이미지와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원시적인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뛰어난 관찰

동굴벽화를 자세히 보면 동물 대부분은 옆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옆모습은 몸의 특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뿔이나 발굽처럼 특징적인 부분에서는 한 방향의 시점만 고집하지 않습니다.
몸은 옆에서 바라보면서도 뿔의 특징은 더 잘 보이도록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원근법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미“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라스코 오록스의 뿔과 몸 표현

이것은 앞으로 미술사에서 계속 만나게 될 중요한 문제입니다.
미술은 현실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강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선사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오늘날과 같은 물감이나 붓은 없었습니다. 대신 자연 속에서 색을 발견했습니다.
붉고 노란 색조는 황토와 적철석 같은 철 성분의 광물에서, 검은 색조는 숯이나 망간 계열 재료에서 얻었습니다. 선사시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색이 나는 돌을 발견하고, 그것을 갈아 안료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오늘날 미술재료는 훨씬 정교하게 제조되고 다양한 합성 안료도 사용되지만, 자연의 광물과 여러 재료에서 색을 얻는다는 기본 원리는 수만 년 전의 발견과 이어져 있습니다.
색을 발견하고, 가공하고, 표현의 재료로 바꾸는 인간의 창작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황토·적철석·망간·숯 등 선사시대 안료 자료

선사시대에 이용된 천연 색재료의 예. 프랑스 페슈드라제 유적에서 발견된 황토와 망간 산화물. 
인간은 자연에서 얻은 광물을 갈고 가공하여 색을 만드는 재료로 이용했다.
출처: Eunostos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소장: Musée national de Préhistoire, France

그리고 표현 방법도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선을 긋고,벽을 긁어 새기고,안료를 문지르고,도구를 이용해 칠하고,가루 상태의 안료를 불어 뿌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색이 나는 돌을 벽에 문지른 것이 아닙니다.
재료를 발견하고 → 채취하고 → 가공하고 → 표현에 알맞은 상태로 바꾸어 사용했습니다.
이미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실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화가가 물감과 캔버스, 붓의 성질을 연구하는 행동과 근본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캄캄한 동굴에서 그들은 어떻게 그렸을까

동굴 깊숙한 곳에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림을 그리려면 먼저 빛이 필요했습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동물성 지방 등을 연료로 사용한 램프를 이용했으며, 높은 곳에 그림을 제작하기 위해 구조물이나 발판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라스코 동굴에서 발견된 붉은 사암제 지방 램프. 얕게 파인 부분에 동물성 지방을 연료로 넣어 동굴 내부를 밝히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손잡이에는 선각 장식도 남아 있다.
출처: Musée national de Préhistoire / Musée d’Archéologie nationale

한번 생각해봅시다. 안료를 준비합니다. 그림을 그릴 도구를 챙깁니다.
불빛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그림을 만듭니다.
이 정도의 준비가 필요했다면 동굴의 그림을 단순한 낙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집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림을 그렸을까요?

🪴알타미라 동굴 '울퉁불퉁한 바위에서 들소의 몸을 발견하다'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알타미라 동굴 역시 후기 구석기시대 미술을 대표합니다.
알타미라에는 들소와 말, 사슴, 손의 흔적과 여러 기호가 남아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천장에 그려진 여러 마리의 들소입니다.
알타미라 동굴 다색화 천장

알타미라 동굴의 다색화 천장 일부. 
붉은색과 검은색 안료로 표현한 동물 형상과 자연 암벽의 균열·굴곡이 함께 보인다.
출처: Yvon Fruneau / UNESCO,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IGO

그런데 알타미라의 들소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그림 실력만이 아닙니다.
동굴의 천장은 캔버스처럼 평평하지 않습니다. 튀어나온 곳도 있고 움푹 들어간 곳도 있습니다.
선사시대의 화가는 이 울퉁불퉁한 벽을 방해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돌의 돌출된 부분을 보고 그곳에서 들소의 등과 배, 몸통의 부피를 발견했습니다.
그 위에 선을 긋고 색을 더하자 자연이 만들어놓은 바위의 굴곡이 동물의 몸이 되었습니다.
알타미라 동굴 다색화 천장 복원 모습.

알타미라 동굴 다색화 천장 복원 모습. 
울퉁불퉁한 암벽의 굴곡을 동물의 몸통과 부피 표현에 활용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HTO,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이것은 놀라운 발상입니다. 자연의 형태를 관찰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종이의 얼룩에서 구름이나 얼굴을 발견하고, 나뭇결을 보면서 산맥을 떠올리고, 우연히 생긴 형태에서 새로운 그림을 상상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만 년의 시간이 흐르기 전에도 인간에게는 이미“아, 이것을 이렇게 이용하면 되겠구나.”
하는 창작자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 인간일까?

여기에서 선사미술은 갑자기 우리와 가까워집니다. 우리는 흔히 구석기시대 사람을 ‘원시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구석기와 신석기라는 말은 생활 방식과 도구, 기술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고고학적 구분이지 인간의 정신 수준을 나누는 등급이 아닙니다.
수만 년 전 사람도 자연을 바라보았습니다.
동물을 관찰했습니다.
무언가를 기억했습니다.
두려움과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과 공동체의 삶에서 중요한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미지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훨씬 많은 재료와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이와 캔버스, 유화물감과 사진, 카메라와 컴퓨터, 태블릿과 인공지능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명은 인간에게 수없이 많은 표현 방법을 더해주었습니다. 취향도 다양해지고 이미지의 목적도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술을 걷어내고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여전히 하나의 인간이 남습니다. 보고, 느끼고, 기억하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알타미라의 울퉁불퉁한 벽에서 들소를 발견한 사람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라도 저 형태를 보았다면 그렇게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순간 수만 년이라는 시간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더 이상 ‘먼 옛날의 원시인’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바라본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 했던 또 한 명의 인간을 만나게 됩니다.

🪴알타미라가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

알타미라의 발견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19세기 후반 마르셀리노 산스 데 사우투올라는 어린 딸 마리아와 함께 동굴을 조사하다 천장에 그려진 동물 그림을 확인했습니다. 사우투올라는 그것이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학계에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석기시대 인간이 이렇게 뛰어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유럽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동굴미술이 계속 발견되면서 알타미라의 진정성도 인정받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줍니다. 때로는 유물이 부족해서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진 선입견 때문에 과거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원시인이라면 단순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오히려 눈앞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그림을 그렸을까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왜 동굴에 이런 그림을 남겼을까요?
오랫동안 여러 설명이 제시되었습니다. 사냥의 성공을 위한 주술이었을까?
동물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실제 사냥의 성공을 기원했다는 설명입니다.
한때 매우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발굴된 동물 뼈를 통해 추정한 당시 사람들의 주요 사냥·식용 동물과, 동굴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의 종류와 빈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냥 주술만으로 모든 그림을 설명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종교적 의식이나 믿음과 관계가 있었을까?
동굴 깊숙한 곳의 특별한 공간에서 그림을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종교나 의례와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오래전부터 제기되었습니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이야기와 기호였을까?
동물뿐 아니라 점, 선, 사각형 등 반복되는 기호도 발견됩니다.
따라서 어떤 정보나 이야기, 공동체의 상징을 공유하는 방식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확정된 답은 아닙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하나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기 위해 그리기도 하고,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기도 하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그리기도 하며,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그리기도 합니다.
선사시대 사람들도 그림을 만든 이유가 시대와 장소, 사람에 따라 달랐을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술사에서 가장 정확한 답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우리는 모른다.”단지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추정하고 상상할 뿐입니다.

🪴손자국 — 수만 년의 시간을 건너 만나는 인간

동굴미술에서 동물만큼 마음을 움직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바로 손의 흔적입니다.
여러 손이 한 벽에 겹쳐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수만 년 전에도 인간은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자신의 존재를 남기는 일을 즐겼던 것은 아닐까 상상하게 됩니다.
물론 그 손자국의 정확한 의미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남아 있는 흔적을 바라보며 추정하고 상상할 뿐입니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Cueva de las Manos, 손의 동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Cueva de las Manos, 손의 동굴)’에 남아 있는 
수많은 손 스텐실. 손을 바위에 대고 주변에 안료를 뿌려 손의 형태를 남겼다.
출처: Fjturban / Wikimedia Commons
라이선스: CC BY-SA 3.0
프랑스 코스케 동굴(Cosquer Cave)의 선사시대 손 스텐실.

프랑스 코스케 동굴(Cosquer Cave)의 선사시대 손 스텐실. 
실제 손을 바위에 대고 주변에 안료를 분사해 손의 음영 형태를 남긴 모습이다.
출처: SiefkinDR / Wikimedia Commons
라이선스: CC BY-SA 3.0

손을 벽에 대고 주변에 안료를 뿌린 뒤 손을 떼면 손의 실루엣이 남습니다.
아주 단순한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동물 그림을 바라볼 때와는 느낌이 다릅니다.
동물을 보면 우리는 “무엇을 그렸을까?”를 생각합니다.
손자국을 보는 순간에는 질문이 바뀝니다. “누구의 손이었을까?”
수만 년 전 누군가가 실제로 그곳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손자국이 “나는 여기 있었다”는 의미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그 손을 바라보며 그렇게 느끼는 것은 가능합니다.
나의 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손.그 순간 동굴벽은 시공간의 경계가 됩니다.
한쪽에는 수만 년 전 사람이 있고, 다른 쪽에는 지금 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지 하나가 두 시간을 이어줍니다. 

🪴미술의 시작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잘 그렸다는 것’이 아니다

동굴벽화를 처음 보면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저 시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잘 그렸지?”
물론 뛰어난 관찰력과 표현력은 놀랍습니다.그러나 미술사에서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벽에 그려진 들소는 실제 들소가 아닙니다.그런데 우리는 몇 개의 선과 색을 보는 순간 그것이 들소라는 것을 알아봅니다.
즉 인간은 이미 아주 오래전에
현실의 대상 → 관찰과 기억 → 이미지 → 다른 사람의 인식 이라는 특별한 소통 방법을 만들어냈습니다 눈앞에 없는 것도 이미지로 불러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림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생각을 밖으로 꺼내놓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미대생이라면 여기까지 생각해보자 ‘재현’의 아주 오래된 시작

미술에서 재현(Representation)은 현실을 사진처럼 그대로 복사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그림을 만드는 순간 선택이 시작됩니다. 어떤 부분을 그릴 것인가. 무엇을 생략할 것인가.
무엇을 크게 보여줄 것인가. 어떤 각도에서 바라볼 것인가. 어떤 색을 사용할 것인가.
이미 라스코와 알타미라의 인간들도 이런 선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앞으로 미술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됩니다.
이집트인은 왜 얼굴은 옆으로 그리고 눈은 정면으로 표현했을까?
그리스인은 왜 현실보다 더 이상적인 인체를 만들었을까?
르네상스 화가들은 왜 원근법을 연구했을까?
인상주의 화가들은 왜 정확한 윤곽보다 빛의 변화를 선택했을까?
피카소는 왜 한 얼굴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보여주려고 했을까?
시대는 달라져도 질문은 이어집니다. “인간은 자신이 바라본 세계를 어떻게 이미지로 만들 것인가?”
그 질문의 아주 오래된 흔적을 우리는 동굴벽화에서 만납니다.

🪴그림이 먼저였을까, 음악이 먼저였을까

여기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인간은 그림을 먼저 만들었을까요, 음악을 먼저 만들었을까요?
현재 남아 있는 고고학적 증거만 보면 매우 오래된 선과 그림의 흔적이 발견되고, 확실한 악기로 인정되는 뼈와 상아의 플루트는 그보다 뒤의 시대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림이 음악보다 먼저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림과 새김은 돌과 동굴벽에 남습니다.그러나 소리는 사라집니다.악기가 없어도 인간은 노래할 수 있습니다.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나무와 돌을 두드려 리듬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 흔적은 수만 년 뒤까지 남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음악이 언제 시작되었는가’가 아니라 적어도 어느 시기에는 정교한 악기까지 제작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그런데 그림과 음악 중 무엇이 먼저였는가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이미지를 만들고,소리를 만들고,몸과 물건을 장식하고,기호를 새기고,흔적을 남겼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본래부터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고 싶어 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작품을 볼 때 이것을 찾아보세요

라스코와 알타미라를 볼 때 ‘무슨 동물인가’를 확인하는 데서 끝내지 말고 천천히 질문해보세요.
동물의 어떤 특징을 가장 강조했을까?
선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색을 칠한 곳과 선으로만 표현한 곳은 어떻게 다를까?
바위의 돌출과 균열은 그림에 어떻게 이용되었을까?
왜 동물은 많이 등장하지만 인간과 풍경은 적을까?
서로 겹쳐 있는 동물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나는 울퉁불퉁한 바위에서 어떤 형상을 발견했을까?
내가 그 시대의 인간이라면 동굴 안에 무엇을 남겼을까?
정답을 맞히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할 때 미술사는 연도와 작품명을 암기하는 과목에서 벗어나 인간을 이해하는 공부가 됩니다. 

🪴우리는 수만 년을 건너 같은 이미지를 바라보고 있다

라스코와 알타미라의 그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가졌는지,누구를 사랑했는지,무엇을 두려워했는지,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그러나 그가 바라보았던 들소와 말의 모습은 남았습니다.
손이 움직인 흔적도 남았습니다.돌의 굴곡에서 동물의 몸을 발견했던 생각도 이미지 속에 남아 있습니다.그리고 수만 년 뒤의 우리는 그것을 보고 다시 생각합니다.
“나라도 저렇게 했을 것 같다.”
미술이 가진 놀라운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지는 인간보다 오래 살아남아서로 만날 수 없었던 두 사람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연결합니다.
그래서 선사미술은 단순히 미술사의 가장 오래된 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으로“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구나.” 라고 느끼게 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핵심 정리

시대-선사미술 / 후기 구석기시대
대표 유적-프랑스 라스코 동굴,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주요 표현-말·들소·오록스·사슴 등의 동물,손의 흔적'점·선·도형 등의 기호
재료와 기법-광물성 안료와 숯 등을 이용하여 ,그리기·채색·새기기·문지르기·분사 등 다양한 기법 사용
중요한 특징-동물에 대한 뛰어난 관찰,형태의 선택과 강조,동굴벽의 굴곡을 이용한 입체적 표현,이미지와 공간의 결합
왜 그렸을까?-사냥 주술, 의례와 신앙, 공동체의 기억과 상징 등 여러 해석이 있지만 현재까지 하나의 이유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미술사적 의미-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이 보고 느끼고 기억한 것을 이미지로 바꾸어 다른 인간에게 전달했습니다.문명과 도구는 끊임없이 변화했지만,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모습은 수만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

라스코와 알타미라의 동굴벽화에서 우리는 수만 년 전 인간이 동물과 자신이 바라본 세계를 이미지로 남겼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선사시대, 한반도에서는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남겼을까요?
울산 반구대의 바위에는 고래와 사슴, 호랑이, 멧돼지, 그리고 사냥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굴벽에 색으로 그린 유럽의 선사미술과 달리, 이곳의 사람들은 단단한 바위 표면을 쪼고 갈아 자신의 삶과 주변 세계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인간이지만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지면, 남기는 이미지도 달라집니다.
다음 미술사에서는 「바위에 새긴 이야기|반구대 암각화로 보는 한국 선사미술」을 통해 한반도의 선사인들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가며, 왜 그것을 바위에 새겼는지 살펴봅니다.

대표 자료·출처

|프랑스 문화부, 라스코 동굴 공식 아카이브
라스코 동굴의 벽화, 안료와 제작기법, 동굴미술의 해석에 관한 자료.
|스페인 문화부·국립 알타미라 박물관
알타미라 동굴의 다색화, 들소 표현, 바위 굴곡을 활용한 조형 방식과 발견 과정에 관한 자료.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알타미라와 스페인 북부 구석기 동굴미술
알타미라 동굴미술의 역사적·문화적 가치와 보존에 관한 자료.
|Nature, 선사시대 초기 이미지 제작 관련 연구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의 오래된 손 스텐실과 남아프리카 블롬보스 동굴의 초기 선 그림 등, 라스코와 알타미라보다 앞선 이미지 제작 흔적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자료.

※ 동굴벽화의 제작 목적에 대해서는 하나의 학설을 확정된 사실로 보지 않고, 현재 제시되는 여러 고고학적·미술사적 해석을 함께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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